나는 IMF 와 다가구 주택 으로 망했다.
작성자
csyy1
작성일
25.10.03
조회
7
나는 해외에서 Dollar 를 많이 벌었고 이천 여주 땅으로 돈을 좀 벌었다. 어느날 경기도 안산에 칭구가 부동산을 개업을 하는데 놀러가서 안산 시내를 둘러 보니 그동네는 다가구 주택이
대부분이였다. 한채에 대충 12세대가 살고 있었다. 등기상은 단독주택이고 벌집같이 오골오골 거리며 살고 있었다. 나는 이천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었는데 안산 칭구가 다가구 주택이 지은지가 얼마 안되고 집세가 270 만원이 나오니 사라고 했다. 가격은 총액은 4억2천이고 임대 보증금은6600 만원이다. 은행융자는 5천만원이고.. 보증금과 융자를 공제하고 실투자금은 약 3억 정도였다.
그 동네는 안산 공단이 아주 크고 해서 신도시로 전망이 있는것으로 판단하여 몇게를 사기로 했다. 오늘 급매로 나온것은 바로 계약 하라고 했고 몇게를 더 사도록 했다. 한달만에 4개를 샀다.
그당시에는 보증금과 융자는 나한테는 큰 빚이 아니였다. 다가구 4 동에 그래도 매월 1천만원가까이 들어오니 좀 안전한 사업 같았다.
나는 더 욕심을 내어 땅 투기로 돈을 버는 것보다 안전한 월세로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것이 좋을 것같아서 다가구 주택을 20 채를 구입하기로 맘을 먹고 실행을 하기로 안산에 갔다. 칭구는 거창에서 안산에 와서 영남 부동산을 하고 있고 또 와동인가 그기에서 도 갱상도 사기꾼이 부동산을 허가도 없이 무슨 컨설팅인가 간판을 내고 부동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두 부동산을 통하여
어느해 여름까지 다가구 주택과 상가주택을 14개까지 구입을 했다. 그해까지 다가구 주택 20 채만 있어면 매달 5천만원만 나오면 이제는 불안한 땅 투기는 하지 아니해도 편하게 돈벌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통장에 돈이 다 나가도 든든했다. 그해 추석전까지 20 채를 다 사도록 부동산에 압력을 가했다. 그르나 두채를 더 샀고 모두 16채를 쌌다.
16번째 싼 주택을 잔금치고 등기를 마치고 한달쯤 후에 우리나라 정치뉴스에 이상한 첨 듣는 외환위기니 IMF 니 하는 생소한 뉴스들이 거의 매일 나오는 중이 였다. 어느날은 또 전 경기도 지사였는지 외무부 장관이 였던지 기자회견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외화(달라) 를 차입을 한다고 TV 생중계를 하는 것이였다. 그때는 외환 위기나 IMF 나 환란같은 뜻도 전혀 몰랐고 우리나라 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도 몰랐다.그 때까지 이제는 나는 편하게 잘살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날짜와 년도는 잘모르겠고 상황만 설명을 하는것이다.
그 다음 해 3~4월 달까지 은행 이자를 공제 하고도 대략 3천 800 만원이나오고 월세를 제때에 못내는 사람도 5 집정도는 되였다.
5~6 월달이되니 사회의 분위기가 냉냉하고 좀 싸늘해지는것같았고 TV 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침체가 언제까지 갈런지 또 각공단에는 문을 닫고 부도가 나고 건설회사는 모두 망하고 있고 부도가 나서 근로자들도 길거리로 나선다고 난리가 났더라. 그때까지는 나는 아무걱정도 하지 아니했다. 집세가 착착 잘나오니...
외환 위기가 드디어 안산 공단에 불어닥처 안산 공장이 90 % 가 문을 닫어니 그 공장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여 각자가 자기 고향으로 또는 보증금을 빼어 생활을 하고 어쨌던 보증금을 내어주어야 되는 세대수가 한집 두집이 늘어나기 시작을 하는것이다. 첨에 몇집이 보증금을 주니 너도 나도 모두 집을 빼달라고 했다. 가장이 직장이 문을 닫어니 이사를 나가는수밖에는 없다.
16채에 190 세대가 되는데 보증금을 내어줄돈이 상가포함하여 13 억 정도 였다. 생각이 넘 복잡하여 낼계속
다세대 16체 190 세대중에 보증금과 월세를 반으로 깍아주면 그데로 있겠다고 한사람은 한체중에 1집정도 뿐이고 거의가 다 나간다고 보증금을 빼달라고 아우성 이였다.
190 명의 젊은 세입자 여자들이 2~3일에 한번씩만 전화를 해도 나는 하루종일 집세내어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고 귀찬코 송시러워서 죽을 겉도 같았다. 아침 저녘도 없이 이제는 세입자들이 막무가내로 달려 드는것이다. 세입자들이 절라도 사람들이 잴 많았고 충청도 경상도가 많았다. 대부분 30 대 안팍들이였다. 아무리 담 벼락에다 부처놓고 가로수나 교차로에 방을 내놓아도 집 얻을려는 사람은 없었고 안산에서는 동네 전체가 탈 안산 사태로 번지는것이다. 그문제 뿐이 아니고 다세대 주택 가격도 폭락을 하고 상가도 장사가 안되여 주택이나 상가도 집세가 전혀 들어 오지않고 은행 이자도 대출원금 10억정도에 한달 이자가 첨에는 650 만원정도였는데 년 13 %로 오르고 앞날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은행 이자만 한달에 1160 만원 이고 집세는 2~300 만원 고작 들어 오는것 같고
통장에는 이미 마이나스 2억이 넘어서 더이상 통장으로는 뺄수도 없었다. 다가구 주택은 매입할때는 시세가 4~5억에 대출이 거의가 5천만원이였는데 외환위기에는 단 2억에도 살사람이 없고
다가구 는 은행 대출도 더이상은 해주질 아니했다.
이런 진퇴양난에 빠저 이제는 내 능력으로서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눈만 뜯다하면 세입자들과 보증금 문제로 다투는 일 뿐이고 다른일은 할수는 없고 이제는 여주 대신면과 이천 부발에 농지를 팔아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내주는수 뿐이였는데 반값이라도 살사람이 없는데 은행에도 농지를 담보로 대출은 모두 중단이 됐다. 여주 대신면 옥촌리 잴졸은 농지 2200 평을 반값에 겨우 팔아서 잴 별난 사람 6집을 보증금을 내주었다. 바로 소문이 나서 세입자들이 전화가 빗발치고 울면서 전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큰소리 치는 사람은 보증금 내주고 점잔은 사람은 내줄 생각도 않하고 하면서
전화를 끊지도 않고 애원을 하는것이다. 하도 보증금 반환 문제로 말을 많이 해서 입과 턱이 아프고 우리~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또 나중에 쓰지.
나는 이번 사건으로 여주 교도소에 20 일동안 콩밥을 먹었다. 이유를 함보자. 대신면 옥촌리 옥토골에 경지 정리한 농지를 2900 평을 반값으로 6500 만원에 계약을 하고 계약금및 중도금으로 내가 원해서
5천만원을 받았다.그돈으로 세입자 4 사람에게 보증금으로 주었다. 20 일후에 잔금때 법무사에서 내땅을 산사람과 만나기로 하여 법무사에 갔다. 법무사 사무장이 내땅의 등기부를 떼보니 안산의 세입자들이 무려 17 명이 가압류를 했더라. 놀래 잡빠 지겠더라. 기가 막혀서...요새말로 맨붕이였다. 계약금및 중도금으로 5천만원을 건넨사람은 나를 때려 죽일 테세이고 법무사는 온통 난리가 났다. 나의 땅 매입자는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고 내일까지 돈 5천만원 안줄시에는 낼 오후에 여주 갱찰서에 형사 고발을 하겠다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안산의 세입자들이 어디에 알아보고 나의 부동산에 몇군데 가압류를 다 해놓았다. 몇사람만 가압류를 해놓아도 그 사람들을 불러서 조용히 가압류를 풀고 등기를 넘겨주면 되는데 무려 17 명이 가압류를 해놓았으니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까지 돈5천만원이 없고,.... 가압류 신청자들이 경매를 빨리 부처 경매로 팔리든지 매매로 팔리기만 하년 그래도 1동당 5천만원에서 1억 정도는 건질수는 있는데...그 후에 주택가격이 폭락을 계속하는 바람에 결국 4채만 일반 매매로 팔리고 12 채는 경매로 다 넘어갔다.
10 여일 후에 여주 갱찰서에서 조사계인지 수사계인지 오후 2시까지 준비하고(?) 나와라고 해서 갔다. 경찰의 결론은 땅을 계약할시 그이전 부터 수십명이 가압류 금액 2억 1000 만원이 되여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약을 하여 돈 5천만원을 받아 쓴 혐의 인데 손 계수 씨는 금전관계가 너무 많이 걸려 있어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구속수사를 해야 된다고 검사에게 구속적부심 받아로 가자고 했다. 그르나 나는 세입자들이 가압류를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해도 등기서류상 계약날보다 먼저 약 15 일전에 17 명이나 압류를 했는데 모를리가 없다고 했다. 첨에는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등기상 선후의 관계가 매우 중요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곧바로 갱찰서 바로 조금 앞의 검찰청에 갱찰 차로 가서 조그만한 방에 기다리고 있어니 검사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몇마디만 묻고 나가고 경찰이 나를 수갑을 채워서 이천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 처 넣는 것이 였다. 유치장에 5 일쯤 있다가 여주 교도소로 끌려 갔다. 여주교도소는 시설이 아시아에서는 잴로 잘지어 진것이라고 하더니 시설이 좀 좋았다. 사회에서 바쁘게 활동하다가 철창에 갑짜기 갇치어 있어니 딴 세상에 온것같에서 190 세대의 보증금 독촉에 시달리지 않으니 홀가분한데 세입자들이 걱정이 되여 잠을 못자겠더라.-- 낼또 계속 내일은 여주 교도소 야기를 할것이다.
여주교도소에 들어가자 마자 수갑을 풀어주고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밥그릇 숟까락 젓가락을 주고 따라 오라고 하여 밥그릇을 차고 따라갔더니 2층 감방인데 그곳은 10 평정도의 크기에 죄수들이 6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잴많은 사람이 65 세쯤 되든데 내가 안녕하심까 하니, 이곳은 안녕하신 사람은 없고 무슨일로 왔소 했다.죄 목이 사기라고 하니 얼마나 해먹었소 했다.
나를 포함하여 7명인데 사기범은 나를 포함하여 2명, 교통사범은 2명, 마약사범 1명,병역법위반(여호와증인)1 명, 간통범1명이였다. 그 담날에는 이천에서 공장을 하는 사장인데 폐기물 처리법 위반으로 한사람이 들어왔다.그사람은 빽이 좀있는사람인데 탤렌트 김영란인가 미국에서 어느 모임에서 눈이 맞아서 누구의 소개로 둘다 재혼으로 결혼을 하여 한국에와서 사업을 하다가 폐기물처리법을 위반을 하여 들어 왔다가 4 일만에 석방이 되여 나가더라. 나는 돈 5천만원만 누가 해결을 해주면 당장 석방이 되는데 .. 또 담에게속
콩밥을 14일째 잡수시고 있는데 면회가 있다고 해서 간수를 따라가니 면회실에 비좁도록 13 명이나 왔던데 이유는 보증금을 쪼개어 소액 보증금으로 최우선 변재 받도록하기 위해서 계약서를 쓰가지고 왔다면서 도장만 찍어달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고 세입자들에게 내가 당신들 때문에 여기에 있소 하고 이유를 당신들이 가압류를 해놓고 내한태 말이라도 했어면 그땅을 매매계약을 안하했을 텐데 당신들이 가압류를 한사실을 모루고 다른 사람에게 매매계약을 했음으로 사기로 들어 왔소라고 하니 세입자들이 전화를 해도 안받어니 할수없이 가압류를 했다고 한다.
18 일째에 대신면 소재지 세종부동산을 같이 하던 임사장이 돈5천만원을 구해서 와서 나를 사기로 고소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가르켜주고 돈을 주고 고소를 취하를 하여 나는 20 일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그후 16채의 다가구 주택중에 몇채만 현금으로 팔고 나머지 열몇채는 모두 갱매로 넘겨저서 한채에 700 만원내지 2300 만원을 환급을 받았다.
다가주 주택 16 채에 실투자금 44억이고경매 환급금이 약 5억즘이되나 2년정도의 외환위기중에 몇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에 3억도 못쥐게 되였다. 돈은 돌고 돈다, 본래 돈놈들이 돈돈한다.
지금 바같에는 아들 손자들이 설 시인다고 온다고 왁짜지글한다. - 담에 계속 -
대부분이였다. 한채에 대충 12세대가 살고 있었다. 등기상은 단독주택이고 벌집같이 오골오골 거리며 살고 있었다. 나는 이천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었는데 안산 칭구가 다가구 주택이 지은지가 얼마 안되고 집세가 270 만원이 나오니 사라고 했다. 가격은 총액은 4억2천이고 임대 보증금은6600 만원이다. 은행융자는 5천만원이고.. 보증금과 융자를 공제하고 실투자금은 약 3억 정도였다.
그 동네는 안산 공단이 아주 크고 해서 신도시로 전망이 있는것으로 판단하여 몇게를 사기로 했다. 오늘 급매로 나온것은 바로 계약 하라고 했고 몇게를 더 사도록 했다. 한달만에 4개를 샀다.
그당시에는 보증금과 융자는 나한테는 큰 빚이 아니였다. 다가구 4 동에 그래도 매월 1천만원가까이 들어오니 좀 안전한 사업 같았다.
나는 더 욕심을 내어 땅 투기로 돈을 버는 것보다 안전한 월세로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것이 좋을 것같아서 다가구 주택을 20 채를 구입하기로 맘을 먹고 실행을 하기로 안산에 갔다. 칭구는 거창에서 안산에 와서 영남 부동산을 하고 있고 또 와동인가 그기에서 도 갱상도 사기꾼이 부동산을 허가도 없이 무슨 컨설팅인가 간판을 내고 부동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두 부동산을 통하여
어느해 여름까지 다가구 주택과 상가주택을 14개까지 구입을 했다. 그해까지 다가구 주택 20 채만 있어면 매달 5천만원만 나오면 이제는 불안한 땅 투기는 하지 아니해도 편하게 돈벌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통장에 돈이 다 나가도 든든했다. 그해 추석전까지 20 채를 다 사도록 부동산에 압력을 가했다. 그르나 두채를 더 샀고 모두 16채를 쌌다.
16번째 싼 주택을 잔금치고 등기를 마치고 한달쯤 후에 우리나라 정치뉴스에 이상한 첨 듣는 외환위기니 IMF 니 하는 생소한 뉴스들이 거의 매일 나오는 중이 였다. 어느날은 또 전 경기도 지사였는지 외무부 장관이 였던지 기자회견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외화(달라) 를 차입을 한다고 TV 생중계를 하는 것이였다. 그때는 외환 위기나 IMF 나 환란같은 뜻도 전혀 몰랐고 우리나라 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도 몰랐다.그 때까지 이제는 나는 편하게 잘살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날짜와 년도는 잘모르겠고 상황만 설명을 하는것이다.
그 다음 해 3~4월 달까지 은행 이자를 공제 하고도 대략 3천 800 만원이나오고 월세를 제때에 못내는 사람도 5 집정도는 되였다.
5~6 월달이되니 사회의 분위기가 냉냉하고 좀 싸늘해지는것같았고 TV 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침체가 언제까지 갈런지 또 각공단에는 문을 닫고 부도가 나고 건설회사는 모두 망하고 있고 부도가 나서 근로자들도 길거리로 나선다고 난리가 났더라. 그때까지는 나는 아무걱정도 하지 아니했다. 집세가 착착 잘나오니...
외환 위기가 드디어 안산 공단에 불어닥처 안산 공장이 90 % 가 문을 닫어니 그 공장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여 각자가 자기 고향으로 또는 보증금을 빼어 생활을 하고 어쨌던 보증금을 내어주어야 되는 세대수가 한집 두집이 늘어나기 시작을 하는것이다. 첨에 몇집이 보증금을 주니 너도 나도 모두 집을 빼달라고 했다. 가장이 직장이 문을 닫어니 이사를 나가는수밖에는 없다.
16채에 190 세대가 되는데 보증금을 내어줄돈이 상가포함하여 13 억 정도 였다. 생각이 넘 복잡하여 낼계속
다세대 16체 190 세대중에 보증금과 월세를 반으로 깍아주면 그데로 있겠다고 한사람은 한체중에 1집정도 뿐이고 거의가 다 나간다고 보증금을 빼달라고 아우성 이였다.
190 명의 젊은 세입자 여자들이 2~3일에 한번씩만 전화를 해도 나는 하루종일 집세내어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고 귀찬코 송시러워서 죽을 겉도 같았다. 아침 저녘도 없이 이제는 세입자들이 막무가내로 달려 드는것이다. 세입자들이 절라도 사람들이 잴 많았고 충청도 경상도가 많았다. 대부분 30 대 안팍들이였다. 아무리 담 벼락에다 부처놓고 가로수나 교차로에 방을 내놓아도 집 얻을려는 사람은 없었고 안산에서는 동네 전체가 탈 안산 사태로 번지는것이다. 그문제 뿐이 아니고 다세대 주택 가격도 폭락을 하고 상가도 장사가 안되여 주택이나 상가도 집세가 전혀 들어 오지않고 은행 이자도 대출원금 10억정도에 한달 이자가 첨에는 650 만원정도였는데 년 13 %로 오르고 앞날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은행 이자만 한달에 1160 만원 이고 집세는 2~300 만원 고작 들어 오는것 같고
통장에는 이미 마이나스 2억이 넘어서 더이상 통장으로는 뺄수도 없었다. 다가구 주택은 매입할때는 시세가 4~5억에 대출이 거의가 5천만원이였는데 외환위기에는 단 2억에도 살사람이 없고
다가구 는 은행 대출도 더이상은 해주질 아니했다.
이런 진퇴양난에 빠저 이제는 내 능력으로서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눈만 뜯다하면 세입자들과 보증금 문제로 다투는 일 뿐이고 다른일은 할수는 없고 이제는 여주 대신면과 이천 부발에 농지를 팔아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내주는수 뿐이였는데 반값이라도 살사람이 없는데 은행에도 농지를 담보로 대출은 모두 중단이 됐다. 여주 대신면 옥촌리 잴졸은 농지 2200 평을 반값에 겨우 팔아서 잴 별난 사람 6집을 보증금을 내주었다. 바로 소문이 나서 세입자들이 전화가 빗발치고 울면서 전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큰소리 치는 사람은 보증금 내주고 점잔은 사람은 내줄 생각도 않하고 하면서
전화를 끊지도 않고 애원을 하는것이다. 하도 보증금 반환 문제로 말을 많이 해서 입과 턱이 아프고 우리~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또 나중에 쓰지.
나는 이번 사건으로 여주 교도소에 20 일동안 콩밥을 먹었다. 이유를 함보자. 대신면 옥촌리 옥토골에 경지 정리한 농지를 2900 평을 반값으로 6500 만원에 계약을 하고 계약금및 중도금으로 내가 원해서
5천만원을 받았다.그돈으로 세입자 4 사람에게 보증금으로 주었다. 20 일후에 잔금때 법무사에서 내땅을 산사람과 만나기로 하여 법무사에 갔다. 법무사 사무장이 내땅의 등기부를 떼보니 안산의 세입자들이 무려 17 명이 가압류를 했더라. 놀래 잡빠 지겠더라. 기가 막혀서...요새말로 맨붕이였다. 계약금및 중도금으로 5천만원을 건넨사람은 나를 때려 죽일 테세이고 법무사는 온통 난리가 났다. 나의 땅 매입자는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고 내일까지 돈 5천만원 안줄시에는 낼 오후에 여주 갱찰서에 형사 고발을 하겠다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안산의 세입자들이 어디에 알아보고 나의 부동산에 몇군데 가압류를 다 해놓았다. 몇사람만 가압류를 해놓아도 그 사람들을 불러서 조용히 가압류를 풀고 등기를 넘겨주면 되는데 무려 17 명이 가압류를 해놓았으니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까지 돈5천만원이 없고,.... 가압류 신청자들이 경매를 빨리 부처 경매로 팔리든지 매매로 팔리기만 하년 그래도 1동당 5천만원에서 1억 정도는 건질수는 있는데...그 후에 주택가격이 폭락을 계속하는 바람에 결국 4채만 일반 매매로 팔리고 12 채는 경매로 다 넘어갔다.
10 여일 후에 여주 갱찰서에서 조사계인지 수사계인지 오후 2시까지 준비하고(?) 나와라고 해서 갔다. 경찰의 결론은 땅을 계약할시 그이전 부터 수십명이 가압류 금액 2억 1000 만원이 되여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약을 하여 돈 5천만원을 받아 쓴 혐의 인데 손 계수 씨는 금전관계가 너무 많이 걸려 있어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구속수사를 해야 된다고 검사에게 구속적부심 받아로 가자고 했다. 그르나 나는 세입자들이 가압류를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해도 등기서류상 계약날보다 먼저 약 15 일전에 17 명이나 압류를 했는데 모를리가 없다고 했다. 첨에는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등기상 선후의 관계가 매우 중요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곧바로 갱찰서 바로 조금 앞의 검찰청에 갱찰 차로 가서 조그만한 방에 기다리고 있어니 검사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몇마디만 묻고 나가고 경찰이 나를 수갑을 채워서 이천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 처 넣는 것이 였다. 유치장에 5 일쯤 있다가 여주 교도소로 끌려 갔다. 여주교도소는 시설이 아시아에서는 잴로 잘지어 진것이라고 하더니 시설이 좀 좋았다. 사회에서 바쁘게 활동하다가 철창에 갑짜기 갇치어 있어니 딴 세상에 온것같에서 190 세대의 보증금 독촉에 시달리지 않으니 홀가분한데 세입자들이 걱정이 되여 잠을 못자겠더라.-- 낼또 계속 내일은 여주 교도소 야기를 할것이다.
여주교도소에 들어가자 마자 수갑을 풀어주고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밥그릇 숟까락 젓가락을 주고 따라 오라고 하여 밥그릇을 차고 따라갔더니 2층 감방인데 그곳은 10 평정도의 크기에 죄수들이 6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잴많은 사람이 65 세쯤 되든데 내가 안녕하심까 하니, 이곳은 안녕하신 사람은 없고 무슨일로 왔소 했다.죄 목이 사기라고 하니 얼마나 해먹었소 했다.
나를 포함하여 7명인데 사기범은 나를 포함하여 2명, 교통사범은 2명, 마약사범 1명,병역법위반(여호와증인)1 명, 간통범1명이였다. 그 담날에는 이천에서 공장을 하는 사장인데 폐기물 처리법 위반으로 한사람이 들어왔다.그사람은 빽이 좀있는사람인데 탤렌트 김영란인가 미국에서 어느 모임에서 눈이 맞아서 누구의 소개로 둘다 재혼으로 결혼을 하여 한국에와서 사업을 하다가 폐기물처리법을 위반을 하여 들어 왔다가 4 일만에 석방이 되여 나가더라. 나는 돈 5천만원만 누가 해결을 해주면 당장 석방이 되는데 .. 또 담에게속
콩밥을 14일째 잡수시고 있는데 면회가 있다고 해서 간수를 따라가니 면회실에 비좁도록 13 명이나 왔던데 이유는 보증금을 쪼개어 소액 보증금으로 최우선 변재 받도록하기 위해서 계약서를 쓰가지고 왔다면서 도장만 찍어달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고 세입자들에게 내가 당신들 때문에 여기에 있소 하고 이유를 당신들이 가압류를 해놓고 내한태 말이라도 했어면 그땅을 매매계약을 안하했을 텐데 당신들이 가압류를 한사실을 모루고 다른 사람에게 매매계약을 했음으로 사기로 들어 왔소라고 하니 세입자들이 전화를 해도 안받어니 할수없이 가압류를 했다고 한다.
18 일째에 대신면 소재지 세종부동산을 같이 하던 임사장이 돈5천만원을 구해서 와서 나를 사기로 고소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가르켜주고 돈을 주고 고소를 취하를 하여 나는 20 일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그후 16채의 다가구 주택중에 몇채만 현금으로 팔고 나머지 열몇채는 모두 갱매로 넘겨저서 한채에 700 만원내지 2300 만원을 환급을 받았다.
다가주 주택 16 채에 실투자금 44억이고경매 환급금이 약 5억즘이되나 2년정도의 외환위기중에 몇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에 3억도 못쥐게 되였다. 돈은 돌고 돈다, 본래 돈놈들이 돈돈한다.
지금 바같에는 아들 손자들이 설 시인다고 온다고 왁짜지글한다. - 담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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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1.09 | 0 | 45 |
| 2226 |
"Life is like wind"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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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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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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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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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1.08 | 0 | 34 |
| 2225 |
썩어버릴고구마 나누어주버리자.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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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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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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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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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1.08 | 0 | 38 |
| 2224 |
귀농초보들, 토질을 잘보고 땅을 매입을 해야된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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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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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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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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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1.06 | 0 | 97 |
| 2223 |
농지값이 폭락할듯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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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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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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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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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1.05 | 0 | 91 |
| 2222 |
고구마 120 박스 거의 다팔았는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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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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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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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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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0.31 | 0 | 126 |
| 2221 |
고구마를 팔았는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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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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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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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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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0.29 | 0 | 113 |
| 2220 |
고구마 캐는데 ㅈ 빠젓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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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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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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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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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0.28 | 0 | 78 |
| 2219 |
넘처나는 사과밭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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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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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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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 2025.10.27 | 0 | 84 |